...
여기가 어디지?
잘 모르겠다. 여기는 너무 좁았고, 한 줌의 빛도 존재하지 않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기억 속 어린 날의 비좁은 화물칸처럼.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숨이 턱 막혔다. 나는 여기 갇힌 건가...?
침착함을 유지해보려 가슴에 손을 얹고 숨을 골랐지만 잘 되지 않았다. 오히려 떨림이 더 심해지고, 심장이 크게 요동쳤다.
거기 아무도 없어요? 여기서 꺼내 주세요!
목이 터져라 외쳐보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다. 당연하다. 내 목에서는 바람 빠지는 것과 비슷한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으니까.
나의 '외침'은 내가 날 때 부터 나를 가두고 있던 벽에 가로막힌다. 누구에게도 전해지지 않는다는 걸, 닿지 못한다는 것 쯤은 알고 있지만, 그렇지만...
...바깥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소란에— 그제서야 여기는 울프팩의 격납고이고, 나는 파손된 기체의 콕핏 안에 있다는 사실을 겨우 떠올렸다. 아무래도 카메라와 디스플레이가 손상되고, 착함한 후에는 파워까지 나가버린 모양이다. 되는 게 없는 날이다.
어떻게 함으로 돌아왔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자력은 아니었겠지. 추진체마저 거의 맛이 갔을 텐데.
...이왕 데리고 왔으면 여기서 꺼내 주고 갈 것이지.
...모르겠다. 지금은 그냥 모든 게 무서웠다. 나는 애써 어둠 속을 더듬어 수동으로 해치를 연 뒤, 숨을 쉬는 것도 잊어버린 채– 엉망이 된 기체를 뒤로하고 도망치듯 자리를 박차고 격납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무서웠다. 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고 또 다시 눈 앞에서 무언가를 잃어버리게 될까 무서웠다. 할 수 있다는 걸 입증하지 못하고 버려지거나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은 채 방치되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지금 너무 무섭다고, 도와달라고, 잠깐이라도 좋으니 손을 잡아달라고 하고 싶은데...
누구에게?
정처 없이 달려나가던 발걸음이 서서히 느려지다 멈춘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른 탓에 생각하는 데 방해된다.
카이넨? 헨리크?
...방금의 상황을 보지 않았는가. 지금은 나보단 그들에게 더 도움이 필요했다. 부서져도 상관 없는 존재 인 내가 더 우선시되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고, 나는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없다. 막는 것 조차 할 수 없었는데 가능할 리가.
모드레드?
... 그도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지는–몸 상태 이야기이다– 않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그는 '랑슬로' 를 부정하며 모두와 거리를 두려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그가 내 어리광 같은 걸 받아줄 리 없다.
노아?
아니, 아니다. 노아는 확실히 부상자들의 치료로 바쁠 것이다. 내게 신경 써 줄 여유 따윈 없다. 무엇보다 그에게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지지 않는 게 좋겠다고 한 사람은 나였다.
유스티아?
...그럴 여유가 있을까. 무엇보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건 빛이다. 수축하고 붕괴하며 점멸하는 흉성 같은 게 아니라, 저 하늘에 밝게 빛나는 길잡이별 말이다. 그 빛에 닿고 싶다는 무거운 고민 위에 이런 그림자를 드리우게 할 수는 없다.
안타? 안타는...
괜찮을까? 안타의 기체가 있던 쪽이 꽤 소란스러웠던 것 같은데. 모르겠다. ...나는 지금 힘이 되어 줄 수 없다. 이런 모습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 그라면 자기 자신보다 내 상태를 더 걱정할 것이 분명했다. ...당장 나도 그러고 있지 않는가.
그러니까... 지금 그 사람의 옆에 있는 역할은 내 몫이 아니다.
그리고 통신이 끊어지기 전 들려오던 비명을 기억해낸다.
그건 분명 당신의 것이었다. 알 수 있다. 전에도 들은 적 있으니까.
...순간 헉, 하고 숨을 들이쉰다. 어쩐지 2년 전의 그 날 같아서.
두 번의 섬광,
사라지는 생명,
끊어지는 통신 너머로 들려오는 비명,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
...
분주하게 움직이는 인파를 헤치며 그들의 반대 방향으로 달린다. 모든 소리가 멀어져가고, 이명과 같은–환청이라 부르는 것이 맞을 것이다–콕핏 단위의 파손을 알리는 경보음만이 귓가에 울렸다. 아니야, 아니야! 정신 차려, 그 때 와는 달라!
하지만 무엇이 다르지?
일단은 '양 쪽 다리가 멀쩡하다' ... 는 아니었다. 이미 하나가 없는 데다 남은 한쪽도 최근 들어서는 삐걱거리고 있으니 이건 확실히 아니다.
그럼... '모두 무사' 하다는 것? 무사한 게 맞나? 확인하기 두려웠다. 무사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부서졌으면 어떡하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기엔... 나는 바보같아 보일 정도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는데.
적어도 내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붙잡을 수 있었다면— 차라리, 카이넨의 말대로 달려들지 말고 뒤로 빠져 피해 있었더라면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 도박수를 던졌고, 보기 좋게 실패했다. 바보 같고 한심하다. 왜 그런 짓을 했지? 이성적이었던 것도, 감정적이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생각이 없었던 거다.
...나답지 않았다. 초조했나? 그랬던 것도 같다. 그도 그럴 게, 당장 목숨이 오고가는 전장 한복판에서 짐덩어리가 되어버린 셈이다... 그 때의 상황을 다시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 끔찍하다. 함께 싸우지는 못할 망정 걸림돌이 됐다니. 난 그러려던 게 아니었는데. 짐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뭐가 다른 건지 모르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더 나쁘면 나빴지. 그래. 그런 거다.
...아아, 싫어. 싫다. 다신 겪고 싶지 않았는데.
이런 기분을 느끼는 건 그 날 한 번으로도 충분했는데!
괴롭다. 너무 괴로워서 절규를 내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숨을 들이쉬고 내뱉기 바쁜 목이 그런 걸 뱉어줄 리 없었다.
그렇게 도망치듯 다다른 곳은 격납고 근처의 금속 폐기물 보관고였다. 나는 금속 잔해 더미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그 안에 웅크려 소리 없이 서럽게 울었다.
좁고, 어둡고, 차갑고, 아늑하다. 서늘하고, 춥다... 그럴 리 없겠지만, 입김이 나오겠다고 생각될 정도로 추웠다.
...여전히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누가 좀 도와달라고 외치고 싶은데, 억눌린 울음소리만이 새어나왔다. 마치 목이 졸린 것 같다. 아니, 목에 걸린 이것이 내 목을 조르고 있는 건가?
...숨이 막힌다. 이대로는 숨을 쉬지 못해 죽어버릴 것 같았다. 안 돼, 이대로는 죽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숨은 쉬게 해 줘—
...요란한 소리로 삑삑대던 장치를 잡아 뜯고는, 그것을 잔해 더미 사이로 집어던지자 막혀있던 숨이 기침과 함께 터져 나왔다. 장치가 주사기를 겸하고 있던 탓에 바늘이 있던 자리에서 무언가–당연하게도 내 피일 것이다–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제서야 숨을 고르며 천천히 이성을 되찾는다. ...내가 뭘 한 거지?
...현 시점에서 이 장치를 다시 만들 수 있는 자재 따윈 없다. 구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거니와, 그 시간 동안의 공백 때문에 약을 증량하는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더 이상은 내 몸이 견디지 못한다.
이미 약에 절여질 대로 절여진 몸이다. 마치 부패를 막기 위해 특수 용액에 가득 찬 통에 넣어진 표본인 것 마냥...그런데 지금 그 통을 집어던져서 깨부순 것이다. 그것도 내 손으로.
...누가 좀 도와줘.
울음 섞인 목소리로 허공에 중얼거려 보지만, 이 장소 자체를 아는 사람도 얼마 없거니와 쓰레기장과 마찬가지인 곳에 사람이 있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벽에 부딪혀 돌아오는 메아리조차 없다. 함의 웅웅거리는 기계음을 제외하면, 완전한 적막이었다.
목 언저리가 너무나 허전해 옷깃을 잡아당기며 웅크린 채로 몸을 떨었다. 춥다. 분명 불타기 시작했을 터인데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춥고 무서웠다. 이래서 다시 따뜻해지지 않으려 했던 건데.
후회되는 선택을, 후회되는 삶을 살지 않겠다고 말했었는데.
나는...
당신–안타–이 제게 했던 말을 떠올린다. '왜 당신은 자신을 불태우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 처럼 구느냐' 고.
하지만... 하지만, 나는 너무 약해서. 당신만큼 강하지 못해서. 다른 이들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한 걸음을 내딛는 데에도 너무 큰 힘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나를 배려해준답시고 기다려주는 그 모습이 더 싫었다. 내가 그들과 나란히 서 있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그래도 모두 내게 손을 내밀어줬다. 힘들면 당겨서라도 나란히 설 수 있게 해 주겠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힘만으로 걸어갈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을 뿐인데. 나 혼자서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인데...
...내게 남은 시간은 짧고, 내 발은 느리고 무겁다. 그렇다면 나를 불태울 수 밖에 없는 거잖아. 스스로 나아갈 힘을 얻으려면, 떠나가지 않을 온기를 얻으려면.
한 차례 불꽃이 사그라든 뒤에는 이전보다 더 큰 추위가 찾아오겠지만, 그래도, 그래도 나는...
...아니야. 다른 방법이 있을 텐데. 나를 부숴가면서 '나' 에게 매겨진 무게를 덜어내는 것 외에, 분명, 분명 방법이 있을 텐데...
결국 이런 꼴이다. 한 발자국을 겨우 내딛자마자 바닥에 넘어진다. 그렇게 다시 일어서려 애쓰는 동안 또 다시 뒤쳐진다. 기다려 달라고 할 수도 없다. 그도 그럴 게, 저들은 그렇게 빠르게 나아가고 있지도 않다. 그러니 뒤쳐지는 건 내가 너무 느린 탓이다. 천천히 한 걸음씩 걸어나가는 발걸음조차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느린 탓이다. 그러니까 이건 내 문제다. 고작 이런 이유로 못 하겠다며 울어버리고 비겁하게 구는 겁쟁이인 내가 문제다. 그런 약함마저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억지를 부리는 내가...
갑작스레 현기증이 났다. 이내 시야가 암전되었다가, 눈 앞에 별무리 같은 반짝임이 드리웠다.
...정신에 금이 가는 것이 느껴졌다. 낯선 감각은 아니다. 다만... 이번에는 금이 간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잘게 부서지고 흩날리며 반짝이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은하수처럼...
... 이전에도 그러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틀' 안에 담아 두고 흘러내리지 않게 두고 있던 것일 뿐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 '틀' 마저 부서졌다. ...젠장, 그제서야 강화 시술의 부작용 중에 정신적 불안정성— 즉 자아의 붕괴로 이어지는 케이스가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래, 살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기쁘고 행복했던 나머지 잠시 잊고 있었다. 나는 썩어가고 있었다. 몸도, 마음–영혼–도. 그리고 나는 그것을 완화라도 시킬 수 있을 만한 수준의 조치–약물을 들이부어 억지로 버티는 것 말고 제대로 된 '조정' 말이다–를 받은 적이 없다. 자그마치 15년 동안. 그러니 환각 증세를 겪더라도—
내 정신이 붕괴되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싫어. 부서지기 싫다. 썩어 없어지더라도, 적어도 나는 '나' 로서 사라지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나' 를 이루는 것마저 부서지기 시작했다.
...아니, 그런데...
애초에 온전히 '나' 의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나' 에게 있었나?
태어난 것이 아닌 만들어진 존재. 나의 재능이라 생각했던 것들은 전부 인위적으로 주어진 것. 어쩌면 내가 가진 따뜻한 마음이라고 평가되는 것들, 그리고 이 얼굴과 목소리마저도 전부–
아니, 아니야! 내겐 아직 나를 정의할 수 있는 단어가 있다... 최소한 이름만큼은, '4호' 가 아닌 '호타루' 라는 이 이름만큼은 소중한 사람이 내게 준 나의 것이다...
...그런데, 그게 누구였지?
... ...
... 급하게 숨을 들이쉰다. 잠깐이라지만 어떻게, 어떻게 그 사람을 잊을 수가 있어. 생명의 은인을, 처음으로 본 빛을,
'어머니'라 불러 마땅한 그 사람을.
...두려움이 서늘하게 등을 타고 오르며 온 몸을 찌른다.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연약해진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펄떡인다. 그에 비해 온 몸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린 듯 굳어 손 하나도 까딱할 수가 없었다. ...아, 도망치지 말아야 했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쳐서 꼭꼭 숨어버린 탓에 도움을 구할 수가 없었다.
점점 이성이 흐려지고, 공포가 온 몸을 잠식한다. 잔불이 타오르며 다시금 불길이 번지기 시작했다. 눈물은 멈추기는 커녕 더 거세게 쏟아졌다.
...뜨거워. 뜨겁고 아프다. 예전엔 아프지 않았는데, 왜지?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그 감촉마저도 따갑게 느껴졌다. 삼켜왔던 가시들이 온 몸을 찌른다. 아파. 너무 아파서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질렀지만 역시나 제 귓가에만 들리는 것이 되고 만다.
...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금속 더미 위에 누워 있었다. 지금은 어쩐지 전혀 아프지 않았다. 아마도.
무중력 공간에서마저 무겁기만 하던 몸도 이젠 가볍게 느껴졌다. 지금이라면 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럴 리 없는데도 말이다.
기계로 비유하자면 어딘가 단단히 고장이 난 것이 틀림없었다.
이상하게도 아무런 감상이 들지 않았다. 그저 허무한 기분만이 들었다. 모든 감정을 회피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이제 제정신이 아니긴 한가 보다.
버석하게 말라붙은 눈물 자국을 아무렇게나 문질러 닦아내곤, 상처투성이인 목을 가리기 위해 대기실로 가 노멀수트용으로 보관해둔 내의를 꺼냈다. ...거슬리는 금속음에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져서, 문을 열고 닫기를 서너번 정도 반복했다.
두꺼운 옷가지를 껴입으니 추위는 조금 가신 것 같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말을 걸어왔다. ...착각인가? 아니, 착각은 아닌 것 같긴 하다. 의미없는 음절이 뒤섞인 것 같은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아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떴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이다가도, 금세 공허해지는 이 감각이 너무나 불쾌해 텅 비어버린 속에 뭐라도 들이붓기로 했다.
잔으로는 부족해 병 째로 들이킨다. 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타고 남은 재보다도 못한– 할 수 있는 것을 할 기회마저 갖지 못하는,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무언가가 되어버릴 바에는 차라리 완전히 버림받는 게 나았다.
미움받는 편이 나았다.
사라지는 편이 나았다.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누군가 나를 부숴줬으면 했다. 조금이라도 내 이성이, 자아가, '내' 가 남아 있을 때... 멈춰버리고 싶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든 생각이었다.
왜 그걸 다른 사람도 아닌 마르티나에게 털어놨는지는 모르겠다.
나와는 다르게 빛나고 있어서인가? 질투였을지도 모른다. 나도 저렇게 반짝이는 별이고 싶었는데.
사실 그냥 나에게 말을 건 사람이 마르티나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별 의미 없이.
마르티나는 믿고 싶지 않다는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겠지.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조금만 더 힘을 내면 되는데. 코앞에서 포기해버린 나를 이해할 수 없겠지.
그렇지만 어떡해, 더 태울 것이 남아있지 않은걸. 이렇게까지 해도 힘이 모자라서 결승선에 다다르기도 전에 끝나 버릴 텐데. 도움을 청하기 위해 뻗을 손조차 남기지 못하고 잿더미가 되어버릴 텐데.
...그가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내가 뭐라 대답했는지도 모르겠다. 되는 대로 내뱉은 탓에 곪고 썩다 못해 터져버린 것을 날것 그대로 쏟아버린 것도 같다.
나는 웃고 있나? 모르겠다. 아무래도 깨져버린 가면을 아무렇게나 뒤집어쓴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최악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더 이상은 가릴 수도, 고칠 수도 없는, 추하게 뒤틀리고 썩어 문드러진 게 좋을 리 없잖아.
여명을 비추며 밝게 반짝이는 별과, 빛을 잃고 수축하며 붕괴하는 것 따위를 나란히 둘 수 있을 리 없다.
하지만...
당신과 내가 친구라는 이유로, 그리고 지금 내 옆에 아무도 없다는 이유로 그는 나를 끌어안고 토닥였다.
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그런 이유로 납득이 되는 행동이 아니다. 그런데 어째서...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위안을 느낀 것이 반, 분함을 느낀 것이 반이다. 나는 이렇게 추하고 보잘것없는데.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당신을 질투하는데. 하지만 눈물은 말라버렸고, 뭐라 할 힘마저 없을 정도로 지쳐 있었다.
그저 저보다 작은 어깨에 가만히 고개를 기댈 뿐이었다.
...조금 따뜻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잘 모르겠지만, 아까보다는 조금 나아진 것 같아. 아마도.
바보같을 정도의 다정함에 대한 보답이라고 할까, 밑바닥을 내보이고 만 것을 사과한다.
그는 나를 기다리겠다고 한다.
기다린다고? 그 말이 내게 있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어떤 무게를 갖는지 알고 말한 것일까... 모르겠지. 당연한 이야기다.
기다림이란 기대를 걸고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기대를 건다는 것은 믿는다는 것이다. 믿는다는 것은...
...희망을 거는 것이다.
꿈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속이며 마지막 연명을 하려는 내게, 이마저도 곧 부서져 버릴 내게, 희망이라는 무겁고 거창한 것을– 나를 오랜 시간동안 속여왔고, 내겐 너무나 무거웠던 나머지 내던져버리고 만 그것을 준다는 뜻이다.
나는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으스러질 것이 분명한데도.
...주어졌으니 그것을 가진다. 애초에 주어진 대로만 살아온 삶이었으니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의미 없는 고민이라 생각했다.
내가 포기한 시점에서 나의 운명은 이미 내 손을 떠났다. 아니, 애초에 나의 운명이 내 것이었던 적이 있던가...
차라리 그 갈림길에서 사람이 아닌 도구로 살아가는 걸 택할 걸 그랬다. 그랬더라면 이렇게 괴롭지는 않지 않았을 텐데. 고민하고 아파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쓸모를 다하고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을 텐데...
...
이젠 아무래도 좋았다. 지쳤어.
푸른 하늘의 모습을 떠올려봐도 파편들이 마음을 찔러 흘러내리게 할 뿐이었다.
...차라리 그냥 이대로 부서지는 게 낫지 않을까? 부스러기는 잘 감춰 털어내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그러니까, 원래 계획대로 말이다. 하지만 어째선지 그건 싫었다. 왜지? 이젠 나도 내 마음을 모른다. 이걸 남아 있는 마음이라 볼 수 있을진 모르겠다만.
하지만... 그래.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상처받는 게 싫은 것 같다. 스스로의 결말을 정해놓고 이러는 것 만큼 이기적인 일도 없다. 그렇지만 내가 사라지더라도 괜찮을 거라는 확신이 없는 것 같아. 그래서인 것 같다. 애초에 가면이 전부 부서진 시점에서 더는 실현 불가능한 계획이기도 하고.
...심장 소리가 거슬린다. 귀 옆에 있나 싶은 착각이 들 정도로 큰 소리가 편안한 적막 속에서 들려오는 선율을 방해한다. 그것을 감상하는 것도, 잠을 청하는 것 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어 결국 정처 없이 걷는 것을 반복하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샌다.
...어렸을 적 부터 나는 푸른 하늘을 동경해 왔다. 비록 내가 보아왔던 것은 콜로니의 가짜 하늘에 불과했을지라도, 나는 그 푸른 빛이 좋았고, 거기에 닿고 싶었다.
문득 웃음이 나왔다. 비록 지구의 하늘을 사랑하게 되었었다고는 하나 그 시작은 만들어진 모조품이라니. 우습다.
콜로니의 하늘에 닿을 때는 하늘을 향해 추락한다는 표현이 옳겠지. 그러니 나는 이제 내가 닿고 싶은 하늘에 닿겠다는 꿈을 꿀 것이다. 꿈을 꾸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니까. 그래,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제발 깨우지 말아 달라고 믿지 않는 신에게 기도해 본다.
관측창 너머로 작게 비치는 지구를 손에 쥐어 본다. 저 곳이 내가 돌아갈 곳이라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그럴 리가. 땅에서 난 것은 흙으로 돌아가고, 우주에서 난 것은 우주로 돌아간다.
난 것이 아닌 만들어진 것. 그마저도 처음을 내딛었던 곳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돌아갈 곳 같은 건 없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누군가 그렇게 물은 것 같다. 내 목소리지만 '나' 는 아니다.
나도 몰라. 그대로 사라져버리지 않을까.
...그렇지만 답 같은 건 알 수 없다. 애초에 다음이라는 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내가 본 세상은 그랬다. 죽은 이들은 더 이상 말이 없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다.
그래도 만약에, 아주 만약에.
다음이라는 게 있다면, 끝 너머에 또 다른 곳이 존재한다고 한다면...
그곳은 춥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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