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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파란색 악보집</title>
    <link>https://bluescript.tistory.com/</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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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nguage>ko</language>
    <pubDate>Wed, 10 Jun 2026 01:04:4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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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nagingEditor>Xounblue</managing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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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점멸</title>
      <link>https://bluescript.tistory.com/6</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s://youtu.be/smnbPEysX6k?si=WIhqA18r0B_b7KHt&quot; target=&quot;_blank&quot;&gt;&lt;span&gt;https://youtu.be/smnbPEysX6k&lt;/span&gt;&lt;/a&gt;&lt;br&gt;&lt;br&gt;&lt;/p&gt;&lt;hr data-ke-type=&quot;horizontalRule&quot; data-ke-style=&quot;style5&quot;&gt;&lt;p data-ke-size=&quot;size16&quot;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lt;br&gt;...&lt;br&gt;여기가 어디지?&lt;br&gt;&lt;br&gt;잘 모르겠다. 여기는 너무 좁았고, 한 줌의 빛도 존재하지 않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lt;br&gt;마치 기억 속 어린 날의 비좁은 화물칸처럼.&lt;br&gt;...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숨이 턱 막혔다. 나는 여기 갇힌 건가...?&lt;br&gt;침착함을 유지해보려 가슴에 손을 얹고 숨을 골랐지만 잘 되지 않았다. 오히려 떨림이 더 심해지고, 심장이 크게 요동쳤다.&lt;br&gt;&lt;i&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거기 아무도 없어요? 여기서 꺼내 주세요!&lt;/span&gt;&lt;/i&gt;&lt;br&gt;목이 터져라 외쳐보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다. 당연하다. 내 목에서는 바람 빠지는 것과 비슷한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으니까.&lt;br&gt;나의 '외침'은 내가 날 때 부터 나를 가두고 있던 벽에 가로막힌다. 누구에게도 전해지지 않는다는 걸, 닿지 못한다는 것 쯤은 알고 있지만, 그렇지만...&lt;br&gt;&lt;br&gt;...바깥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소란에— 그제서야 여기는 울프팩의 격납고이고, 나는 파손된 기체의 콕핏 안에 있다는 사실을 겨우 떠올렸다. 아무래도 카메라와 디스플레이가 손상되고, 착함한 후에는 파워까지 나가버린 모양이다. 되는 게 없는 날이다.&lt;br&gt;어떻게 함으로 돌아왔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자력은 아니었겠지. 추진체마저 거의 맛이 갔을 텐데.&lt;br&gt;...이왕 데리고 왔으면 여기서 꺼내 주고 갈 것이지.&lt;br&gt;...모르겠다. 지금은 그냥 모든 게 무서웠다. 나는 애써 어둠 속을 더듬어 수동으로 해치를 연 뒤, 숨을 쉬는 것도 잊어버린 채– 엉망이 된 기체를 뒤로하고 도망치듯 자리를 박차고 격납고 밖으로 뛰쳐나왔다.&lt;br&gt;&lt;br&gt;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무서웠다. 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고 또 다시 눈 앞에서 무언가를 잃어버리게 될까 무서웠다. 할 수 있다는 걸 입증하지 못하고 버려지거나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은 채 방치되는 것이 두려웠다.&lt;br&gt;그래서 지금 너무 무섭다고, 도와달라고, 잠깐이라도 좋으니 손을 잡아달라고 하고 싶은데...&lt;br&gt;&lt;br&gt;누구에게?&lt;br&gt;&lt;br&gt;정처 없이 달려나가던 발걸음이 서서히 느려지다 멈춘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른 탓에 생각하는 데 방해된다.&lt;br&gt;&lt;br&gt;카이넨? 헨리크?&lt;br&gt;...방금의 상황을 보지 않았는가. 지금은 나보단 그들에게 더 도움이 필요했다. &lt;i&gt;부서져도 상관 없는 존재 &lt;/i&gt;인 내가 더 우선시되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고, 나는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없다. &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막는 것 조차 할 수 없었는데 가능할 리가.&lt;/span&gt;&lt;br&gt;&lt;br&gt;모드레드?&lt;br&gt;... 그도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지는&lt;i&gt;–몸 상태 이야기이다–&lt;/i&gt; 않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그는 '랑슬로' 를 부정하며 모두와 거리를 두려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그가 내 어리광 같은 걸 받아줄 리 없다.&lt;br&gt;&lt;br&gt;노아?&lt;br&gt;아니, 아니다. 노아는 확실히 부상자들의 치료로 바쁠 것이다. 내게 신경 써 줄 여유 따윈 없다. 무엇보다 그에게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지지 않는 게 좋겠다고 한 사람은 나였다.&lt;br&gt;&lt;br&gt;유스티아?&lt;br&gt;...그럴 여유가 있을까. 무엇보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건 빛이다. 수축하고 붕괴하며 점멸하는 흉성 같은 게 아니라, 저 하늘에 밝게 빛나는 길잡이별 말이다. 그 빛에 닿고 싶다는 무거운 고민 위에 이런 그림자를 드리우게 할 수는 없다. &lt;br&gt;&lt;br&gt;안타? 안타는...&lt;br&gt;괜찮을까? 안타의 기체가 있던 쪽이 꽤 소란스러웠던 것 같은데. 모르겠다. ...나는 지금 힘이 되어 줄 수 없다. 이런 모습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 그라면 자기 자신보다 내 상태를 더 걱정할 것이 분명했다. &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당장 나도 그러고 있지 않는가.&lt;/span&gt;&lt;br&gt;그러니까... 지금 그 사람의 옆에 있는 역할은 내 몫이 아니다.&lt;br&gt;&lt;br&gt;그리고 통신이 끊어지기 전 들려오던 비명을 기억해낸다.&lt;br&gt;그건 분명 당신의 것이었다. 알 수 있다. 전에도 들은 적 있으니까.&lt;br&gt;&lt;br&gt;...순간 헉, 하고 숨을 들이쉰다. 어쩐지 2년 전의 그 날 같아서.&lt;br&gt;&lt;br&gt;&lt;i&gt;두 번의 섬광,&lt;/i&gt;&lt;br&gt;&amp;nbsp;&lt;br&gt;&lt;i&gt;사라지는 생명, &lt;/i&gt;&lt;br&gt;&amp;nbsp;&lt;br&gt;&lt;i&gt;끊어지는 통신 너머로 들려오는 비명, &lt;/i&gt;&lt;br&gt;&amp;nbsp;&lt;br&gt;&lt;i&gt;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lt;/i&gt;&lt;br&gt;...&lt;br&gt;분주하게 움직이는 인파를 헤치며 그들의 반대 방향으로 달린다. 모든 소리가 멀어져가고, 이명과 같은&lt;i&gt;–환청이라 부르는 것이 맞을 것이다–&lt;/i&gt;콕핏 단위의 파손을 알리는 경보음만이 귓가에 울렸다. 아니야, 아니야! 정신 차려, &lt;i&gt;그 때 &lt;/i&gt;와는 달라!&lt;br&gt;&lt;br&gt;하지만 무엇이 다르지?&lt;br&gt;&lt;br&gt;일단은 '양 쪽 다리가 멀쩡하다' ... 는 아니었다. 이미 하나가 없는 데다 남은 한쪽도 최근 들어서는 삐걱거리고 있으니 이건 확실히 아니다.&lt;br&gt;그럼... '모두 무사' 하다는 것? 무사한 게 맞나? 확인하기 두려웠다. 무사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부서졌으면 어떡하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기엔... 나는 바보같아 보일 정도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는데.&lt;br&gt;적어도 내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붙잡을 수 있었다면— 차라리, 카이넨의 말대로 달려들지 말고 뒤로 빠져 피해 있었더라면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 도박수를 던졌고, 보기 좋게 실패했다. 바보 같고 한심하다. 왜 그런 짓을 했지? 이성적이었던 것도, 감정적이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생각이 없었던 거다.&lt;br&gt;...나답지 않았다. 초조했나? 그랬던 것도 같다. 그도 그럴 게, 당장 목숨이 오고가는 전장 한복판에서 짐덩어리가 되어버린 셈이다... 그 때의 상황을 다시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 끔찍하다. 함께 싸우지는 못할 망정 걸림돌이 됐다니. 난 그러려던 게 아니었는데. 짐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lt;br&gt;&lt;br&gt;결국 뭐가 다른 건지 모르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더 나쁘면 나빴지. 그래. 그런 거다.&lt;br&gt;...아아, 싫어. 싫다. 다신 겪고 싶지 않았는데.&lt;br&gt;&lt;i&gt;이런 기분을 느끼는 건 그 날 한 번으로도 충분했는데!&lt;/i&gt;&lt;br&gt;&lt;br&gt;괴롭다. 너무 괴로워서 절규를 내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숨을 들이쉬고 내뱉기 바쁜 목이 그런 걸 뱉어줄 리 없었다.&lt;br&gt;&lt;br&gt;그렇게 도망치듯 다다른 곳은 격납고 근처의 금속 폐기물 보관고였다. 나는 금속 잔해 더미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그 안에 웅크려 소리 없이 서럽게 울었다.&lt;br&gt;좁고, 어둡고, 차갑고, 아늑하다. 서늘하고, 춥다... 그럴 리 없겠지만, 입김이 나오겠다고 생각될 정도로 &lt;i&gt;추웠다.&lt;/i&gt;&lt;br&gt;&lt;br&gt;...여전히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누가 좀 도와달라고 외치고 싶은데, 억눌린 울음소리만이 새어나왔다. 마치 목이 졸린 것 같다. 아니, 목에 걸린 이것이 내 목을 조르고 있는 건가?&lt;br&gt;...숨이 막힌다. 이대로는 숨을 쉬지 못해 죽어버릴 것 같았다. 안 돼, 이대로는 죽고 싶지 않았다.&lt;br&gt;&lt;i&gt;적어도 숨은 쉬게 해 줘—&lt;/i&gt;&lt;br&gt;&lt;br&gt;...요란한 소리로 삑삑대던 장치를 잡아 뜯고는, 그것을 잔해 더미 사이로 집어던지자 막혀있던 숨이 기침과 함께 터져 나왔다. 장치가 주사기를 겸하고 있던 탓에 바늘이 있던 자리에서 무언가&lt;i&gt;–당연하게도 내 피일 것이다–&lt;/i&gt;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lt;br&gt;&lt;br&gt;그제서야 숨을 고르며 천천히 이성을 되찾는다. ...내가 뭘 한 거지?&lt;br&gt;...현 시점에서 이 장치를 다시 만들 수 있는 자재 따윈 없다. 구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거니와, 그 시간 동안의 공백 때문에 약을 증량하는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더 이상은 내 몸이 견디지 못한다.&lt;br&gt;이미 약에 절여질 대로 절여진 몸이다. 마치 부패를 막기 위해 특수 용액에 가득 찬 통에 넣어진 표본인 것 마냥...그런데 지금 그 통을 집어던져서 깨부순 것이다. 그것도 내 손으로.&lt;br&gt;&lt;br&gt;...누가 좀 도와줘.&lt;br&gt;울음 섞인 목소리로 허공에 중얼거려 보지만, 이 장소 자체를 아는 사람도 얼마 없거니와 쓰레기장과 마찬가지인 곳에 사람이 있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벽에 부딪혀 돌아오는 메아리조차 없다. 함의 웅웅거리는 기계음을 제외하면, 완전한 적막이었다.&lt;br&gt;&lt;br&gt;목 언저리가 너무나 허전해 옷깃을 잡아당기며 웅크린 채로 몸을 떨었다. 춥다. 분명 불타기 시작했을 터인데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춥고 무서웠다. 이래서 다시 따뜻해지지 않으려 했던 건데.&lt;br&gt;&lt;br&gt;후회되는 선택을, 후회되는 삶을 살지 않겠다고 말했었는데.&lt;br&gt;나는...&lt;br&gt;&lt;br&gt;당신&lt;i&gt;–안타–&lt;/i&gt;이 제게 했던 말을 떠올린다. &lt;i&gt;'왜 당신은 자신을 불태우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 처럼 구느냐'&lt;/i&gt; 고.&lt;br&gt;하지만... 하지만, 나는 너무 약해서. 당신만큼 강하지 못해서. 다른 이들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한 걸음을 내딛는 데에도 너무 큰 힘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나를 배려해준답시고 기다려주는 그 모습이 더 싫었다. 내가 그들과 나란히 서 있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그래도 모두 내게 손을 내밀어줬다. 힘들면 당겨서라도 나란히 설 수 있게 해 주겠다는 뜻일 것이다.&lt;br&gt;하지만, 나는 내 힘만으로 걸어갈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을 뿐인데. 나 혼자서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인데...&lt;br&gt;&lt;br&gt;...내게 남은 시간은 짧고, 내 발은 느리고 무겁다. 그렇다면 나를 불태울 수 밖에 없는 거잖아. 스스로 나아갈 힘을 얻으려면, 떠나가지 않을 온기를 얻으려면.&lt;br&gt;한 차례 불꽃이 사그라든 뒤에는 이전보다 더 큰 추위가 찾아오겠지만, 그래도, 그래도 나는...&lt;br&gt;...아니야. 다른 방법이 있을 텐데. 나를 부숴가면서 '나' 에게 매겨진 무게를 덜어내는 것 외에, 분명, 분명 방법이 있을 텐데...&lt;br&gt;&lt;br&gt;결국 이런 꼴이다. 한 발자국을 겨우 내딛자마자 바닥에 넘어진다. 그렇게 다시 일어서려 애쓰는 동안 또 다시 뒤쳐진다. 기다려 달라고 할 수도 없다. 그도 그럴 게, 저들은 그렇게 빠르게 나아가고 있지도 않다. 그러니 뒤쳐지는 건 내가 너무 느린 탓이다. 천천히 한 걸음씩 걸어나가는 발걸음조차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느린 탓이다. 그러니까 이건 내 문제다. 고작 이런 이유로 못 하겠다며 울어버리고 비겁하게 구는 겁쟁이인 내가 문제다. 그런 약함마저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억지를 부리는 내가... &lt;br&gt;&lt;br&gt;갑작스레 현기증이 났다. 이내 시야가 암전되었다가, 눈 앞에 별무리 같은 반짝임이 드리웠다.&lt;br&gt;...정신에 금이 가는 것이 느껴졌다. 낯선 감각은 아니다. 다만... 이번에는 금이 간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잘게 부서지고 흩날리며 반짝이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은하수처럼...&lt;br&gt;... 이전에도 그러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틀' 안에 담아 두고 흘러내리지 않게 두고 있던 것일 뿐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 '틀' 마저 부서졌다. ...젠장, 그제서야 강화 시술의 부작용 중에 정신적 불안정성— 즉 자아의 붕괴로 이어지는 케이스가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lt;br&gt;그래, 살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기쁘고 행복했던 나머지 잠시 잊고 있었다. 나는 썩어가고 있었다. 몸도, 마음&lt;i&gt;–영혼–&lt;/i&gt;도. 그리고 나는 그것을 완화라도 시킬 수 있을 만한 수준의 조치&lt;i&gt;–약물을 들이부어 억지로 버티는 것 말고 제대로 된 '조정' 말이다–&lt;/i&gt;를 받은 적이 없다. &lt;i&gt;자그마치 15년 동안.&lt;/i&gt; 그러니 환각 증세를 겪더라도—&lt;br&gt;&lt;br&gt;&lt;i&gt;내 정신이 붕괴되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lt;/i&gt;&lt;br&gt;&lt;br&gt;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싫어. 부서지기 싫다. 썩어 없어지더라도, 적어도 나는 '나' 로서 사라지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나' 를 이루는 것마저 부서지기 시작했다. &lt;br&gt;&lt;br&gt;...아니, 그런데...&lt;br&gt;애초에 온전히 '나' 의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나' 에게 있었나?&lt;br&gt;태어난 것이 아닌 만들어진 존재. 나의 재능이라 생각했던 것들은 전부 인위적으로 주어진 것. 어쩌면 내가 가진 따뜻한 마음이라고 평가되는 것들, 그리고 이 얼굴과 목소리마저도 전부–&lt;br&gt;아니, 아니야! 내겐 아직 나를 정의할 수 있는 단어가 있다... 최소한 이름만큼은, '4호' 가 아닌 '호타루' 라는 이 이름만큼은 소중한 사람이 내게 준 나의 것이다...&lt;br&gt;&lt;i&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그런데, 그게 누구였지?&lt;/span&gt;&lt;/i&gt;&lt;br&gt;... ...&lt;br&gt;... 급하게 숨을 들이쉰다. 잠깐이라지만 어떻게, 어떻게 그 사람을 잊을 수가 있어. 생명의 은인을, 처음으로 본 빛을,&lt;br&gt;'어머니'라 불러 마땅한 그 사람을.&lt;br&gt;...두려움이 서늘하게 등을 타고 오르며 온 몸을 찌른다.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연약해진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펄떡인다. 그에 비해 온 몸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린 듯 굳어 손 하나도 까딱할 수가 없었다. ...아, 도망치지 말아야 했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쳐서 꼭꼭 숨어버린 탓에 도움을 구할 수가 없었다.&lt;br&gt;&lt;br&gt;점점 이성이 흐려지고, 공포가 온 몸을 잠식한다. 잔불이 타오르며 다시금 불길이 번지기 시작했다. 눈물은 멈추기는 커녕 더 거세게 쏟아졌다.&lt;br&gt;...뜨거워. 뜨겁고 아프다. 예전엔 아프지 않았는데, 왜지?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그 감촉마저도 따갑게 느껴졌다. 삼켜왔던 가시들이 온 몸을 찌른다. 아파. 너무 아파서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질렀지만 역시나 제 귓가에만 들리는 것이 되고 만다.&lt;br&gt;&lt;br&gt;...&lt;br&gt;&lt;br&gt;...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금속 더미 위에 누워 있었다. 지금은 어쩐지 &lt;i&gt;전혀&lt;/i&gt;&amp;nbsp;아프지 않았다. 아마도.&lt;br&gt;무중력 공간에서마저 무겁기만 하던 몸도 이젠 가볍게 느껴졌다. 지금이라면 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lt;br&gt;&lt;br&gt;...그럴 리 없는데도 말이다.&lt;br&gt;기계로 비유하자면 어딘가 단단히 고장이 난 것이 틀림없었다.&lt;br&gt;이상하게도 아무런 감상이 들지 않았다. 그저 허무한 기분만이 들었다. 모든 감정을 회피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만.&lt;br&gt;&lt;br&gt;확실히 이제 제정신이 아니긴 한가 보다.&lt;br&gt;&lt;br&gt;버석하게 말라붙은 눈물 자국을 아무렇게나 문질러 닦아내곤, 상처투성이인 목을 가리기 위해 대기실로 가 노멀수트용으로 보관해둔 내의를 꺼냈다. ...거슬리는 금속음에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져서, 문을 열고 닫기를 서너번 정도 반복했다.&lt;br&gt;두꺼운 옷가지를 껴입으니 추위는 조금 가신 것 같다.&lt;br&gt;&lt;br&gt;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말을 걸어왔다. ...착각인가? 아니, 착각은 아닌 것 같긴 하다. 의미없는 음절이 뒤섞인 것 같은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아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떴다.&lt;br&gt;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이다가도, 금세 공허해지는 이 감각이 너무나 불쾌해 텅 비어버린 속에 뭐라도 들이붓기로 했다.&lt;br&gt;잔으로는 부족해 병 째로 들이킨다. &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lt;/span&gt;&lt;br&gt;&lt;br&gt;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타고 남은 재보다도 못한– 할 수 있는 것을 할 기회마저 갖지 못하는,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무언가가 되어버릴 바에는 차라리 완전히 버림받는 게 나았다.&lt;br&gt;&lt;br&gt;미움받는 편이 나았다.&lt;br&gt;사라지는 편이 나았다.&lt;br&gt;&amp;nbsp;&lt;br&gt;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누군가 나를 부숴줬으면 했다. 조금이라도 내 이성이, 자아가, '내' 가 남아 있을 때... &lt;i&gt;멈춰버리고 싶었다.&lt;/i&gt;&lt;br&gt;&lt;br&gt;살면서 처음으로 든 생각이었다.&lt;br&gt;&lt;br&gt;왜 그걸 다른 사람도 아닌 마르티나에게 털어놨는지는 모르겠다.&lt;br&gt;나와는 다르게 빛나고 있어서인가? 질투였을지도 모른다. 나도 저렇게 반짝이는 별이고 싶었는데.&lt;br&gt;사실 그냥 나에게 말을 건 사람이 마르티나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별 의미 없이.&lt;br&gt;&lt;br&gt;마르티나는 믿고 싶지 않다는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lt;br&gt;그렇겠지.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조금만 더 힘을 내면 되는데. 코앞에서 포기해버린 나를 이해할 수 없겠지.&lt;br&gt;그렇지만 어떡해, 더 태울 것이 남아있지 않은걸. 이렇게까지 해도 힘이 모자라서 결승선에 다다르기도 전에 끝나 버릴 텐데. 도움을 청하기 위해 뻗을 손조차 남기지 못하고 잿더미가 되어버릴 텐데.&lt;br&gt;&lt;br&gt;...그가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lt;br&gt;내가 뭐라 대답했는지도 모르겠다. 되는 대로 내뱉은 탓에 곪고 썩다 못해 터져버린 것을 날것 그대로 쏟아버린 것도 같다.&lt;br&gt;나는 웃고 있나? 모르겠다. 아무래도 깨져버린 가면을 아무렇게나 뒤집어쓴 것 같은데.&lt;br&gt;아니나 다를까 최악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더 이상은 가릴 수도, 고칠 수도 없는, 추하게 뒤틀리고 썩어 문드러진 게 좋을 리 없잖아.&lt;br&gt;&lt;br&gt;여명을 비추며 밝게 반짝이는 별과, 빛을 잃고 수축하며 붕괴하는 것 따위를 나란히 둘 수 있을 리 없다.&lt;br&gt;&lt;br&gt;하지만...&lt;br&gt;당신과 내가 친구라는 이유로, 그리고 지금 내 옆에 아무도 없다는 이유로 그는 나를 끌어안고 토닥였다.&lt;br&gt;&lt;br&gt;왜?&lt;br&gt;&lt;br&gt;이해가 되지 않았다. &lt;i&gt;왜?&lt;/i&gt; 그런 이유로 납득이 되는 행동이 아니다. 그런데 어째서...&lt;br&gt;...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위안을 느낀 것이 반, 분함을 느낀 것이 반이다. 나는 이렇게 추하고 보잘것없는데.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당신을 질투하는데. 하지만 눈물은 말라버렸고, 뭐라 할 힘마저 없을 정도로 지쳐 있었다.&lt;br&gt;그저 저보다 작은 어깨에 가만히 고개를 기댈 뿐이었다.&lt;br&gt;...조금 따뜻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잘 모르겠지만, 아까보다는 조금 나아진 것 같아. 아마도.&lt;br&gt;바보같을 정도의 다정함에 대한 보답이라고 할까, 밑바닥을 내보이고 만 것을 사과한다.&lt;br&gt;그는 나를 기다리겠다고 한다.&lt;br&gt;기다린다고? 그 말이 내게 있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어떤 무게를 갖는지 알고 말한 것일까... 모르겠지. 당연한 이야기다.&lt;br&gt;&lt;br&gt;기다림이란 기대를 걸고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기대를 건다는 것은 믿는다는 것이다. 믿는다는 것은...&lt;br&gt;...희망을 거는 것이다.&lt;br&gt;꿈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속이며 마지막 연명을 하려는 내게, 이마저도 곧 부서져 버릴 내게, 희망이라는 무겁고 거창한 것을– 나를 오랜 시간동안 속여왔고, 내겐 너무나 무거웠던 나머지 내던져버리고 만 그것을 준다는 뜻이다.&lt;br&gt;나는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으스러질 것이 분명한데도.&lt;br&gt;...주어졌으니 그것을 가진다. 애초에 주어진 대로만 살아온 삶이었으니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의미 없는 고민이라 생각했다.&lt;br&gt;내가 포기한 시점에서 나의 운명은 이미 내 손을 떠났다. 아니, 애초에 나의 운명이 내 것이었던 적이 있던가...&lt;br&gt;차라리 그 갈림길에서 사람이 아닌 도구로 살아가는 걸 택할 걸 그랬다. 그랬더라면 이렇게 괴롭지는 않지 않았을 텐데. 고민하고 아파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쓸모를 다하고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을 텐데...&lt;br&gt;...&lt;br&gt;이젠 아무래도 좋았다. &lt;i&gt;지쳤어.&lt;/i&gt;&lt;br&gt;푸른 하늘의 모습을 떠올려봐도 파편들이 마음을 찔러 흘러내리게 할 뿐이었다.&lt;br&gt;&lt;br&gt;...차라리 그냥 이대로 부서지는 게 낫지 않을까? 부스러기는 잘 감춰 털어내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그러니까, &lt;i&gt;원래 계획대로&lt;/i&gt; 말이다. 하지만 어째선지 그건 싫었다. 왜지? 이젠 나도 내 마음을 모른다. 이걸 남아 있는 마음이라 볼 수 있을진 모르겠다만.&lt;br&gt;하지만... 그래.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상처받는 게 싫은 것 같다. 스스로의 결말을 정해놓고 이러는 것 만큼 이기적인 일도 없다. 그렇지만 내가 사라지더라도 괜찮을 거라는 확신이 없는 것 같아. 그래서인 것 같다. 애초에 가면이 전부 부서진 시점에서 더는 실현 불가능한 계획이기도 하고.&lt;br&gt;&lt;br&gt;...심장 소리가 거슬린다. 귀 옆에 있나 싶은 착각이 들 정도로 큰 소리가 편안한 적막 속에서 들려오는 선율을 방해한다. 그것을 감상하는 것도, 잠을 청하는 것 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어 결국 정처 없이 걷는 것을 반복하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샌다.&lt;br&gt;&amp;nbsp;&lt;br&gt;...어렸을 적 부터 나는 푸른 하늘을 동경해 왔다. 비록 내가 보아왔던 것은 콜로니의 가짜 하늘에 불과했을지라도, 나는 그 푸른 빛이 좋았고, 거기에 닿고 싶었다.&lt;br&gt;&lt;br&gt;문득 웃음이 나왔다. 비록 지구의 하늘을 사랑하게 되었었다고는 하나 그 시작은 만들어진 모조품이라니. 우습다.&lt;br&gt;콜로니의 하늘에 닿을 때는 하늘을 향해 추락한다는 표현이 옳겠지. 그러니 나는 이제 내가 닿고 싶은 하늘에 닿겠다는 꿈을 꿀 것이다. 꿈을 꾸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니까. 그래,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lt;i&gt;제발 깨우지 말아 달라고&lt;/i&gt; 믿지 않는 신에게 기도해 본다.&lt;br&gt;&lt;br&gt;관측창 너머로 작게 비치는 지구를 손에 쥐어 본다. 저 곳이 내가 돌아갈 곳이라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그럴 리가. 땅에서 난 것은 흙으로 돌아가고, 우주에서 난 것은 우주로 돌아간다.&lt;br&gt;난 것이 아닌 만들어진 것. 그마저도 처음을 내딛었던 곳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lt;br&gt;&amp;nbsp;&lt;br&gt;그렇기 때문에 내가 돌아갈 곳 같은 건 없다.&lt;br&gt;&lt;br&gt;&amp;nbsp;&lt;br&gt;&lt;i&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그렇다면 나는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lt;/span&gt;&lt;/i&gt;&lt;br&gt;&amp;nbsp;&lt;br&gt;누군가 그렇게 물은 것 같다. 내 목소리지만 '나' 는 아니다.&lt;br&gt;&lt;br&gt;&amp;nbsp;&lt;br&gt;&lt;i&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나도 몰라. 그대로 사라져버리지 않을까.&lt;/span&gt;&lt;/i&gt;&lt;br&gt;&amp;nbsp;&lt;br&gt;...그렇지만 답 같은 건 알 수 없다. 애초에 다음이라는 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내가 본 세상은 그랬다. 죽은 이들은 더 이상 말이 없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다.&lt;br&gt;&lt;br&gt;그래도 만약에, 아주 만약에.&lt;br&gt;다음이라는 게 있다면, 끝 너머에 또 다른 곳이 존재한다고 한다면...&lt;br&gt;&lt;br&gt;그곳은 춥지 않았으면 좋겠다.&lt;/p&gt;</description>
      <author>Xounblu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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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5 Jan 2026 18:44:3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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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그럼에도 불구하고</title>
      <link>https://bluescript.tistory.com/5</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나' 는 지금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그 어떤 이름으로도 사로잡을 수 없는 곳에 있다.&lt;br&gt;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lt;br&gt;&lt;br&gt;&lt;i&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괜찮습니다. 힘은 제가 더 세니까, 지켜줄게요.'&lt;/span&gt;&lt;/i&gt;&lt;br&gt;&lt;br&gt;하지만⋯&lt;br&gt;지금의 그는 혼자다. 혼자서 너무 멀리 와 버렸다.&lt;br&gt;&lt;br&gt;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함께 있어주겠다 했던 당신은, 두려워하는 것들로부터 저를 지켜주겠다 했던 당신은, 곁에 없다. 섬광과 함께 잃어버렸다. 영영 잃어버린 것이 아니기를 믿지 않는 신에게 비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lt;br&gt;&lt;br&gt;그것을 깨닫고 나서는 모든 것이 한없이 두렵기만 했다.&lt;br&gt;&lt;br&gt;&lt;/p&gt;&lt;hr data-ke-type=&quot;horizontalRule&quot; data-ke-style=&quot;style1&quot;&gt;&lt;p data-ke-size=&quot;size16&quot;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lt;br&gt;&lt;br&gt;그의 하루는 이러했다. 오늘 처리할 일을 확인한다. 그리 바쁜 날이 아닐 때는 데이비드슨의 잔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가벼운 아침식사를 챙기고 나선다. 하기로 정한 일에 따라 빼앗고, &lt;i&gt;꽃 &lt;/i&gt;을 피우며, 지운다. 식사는 내킬 때만, 잠에는 들지 않을 때가 더 많다.&lt;br&gt;&lt;br&gt;'일'을 마친 후 짙게 배인 피 냄새를 씻어내려 할 때면, 제 몸에서 시체가 썩어가는 듯한 냄새를 풍기는 듯한 착각이 일 때도 있다.&lt;br&gt;어디까지나 착각이다. 하지만 썩어가고 있다는 말 자체가 틀린 건 아니었다.&lt;br&gt;물리적으로 썩어버린 부분이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일까?&lt;br&gt;빠르게 회전하는 시곗바늘을 붙잡는 것은 불가능했다.&lt;br&gt;토해내지 못한 것들은 가시가 되어 심장을 찔렀고, 보이지 않는 상처들은 곪고 썩어 문드러졌다.&lt;br&gt;그는 창백한 손으로 퍼석해진 제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거울을 바라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 티끌 하나 없는 듯한 새하얀 색이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그가 원래 가지고 있던– 생명력을 가득 머금어 밝게 타오르는 듯한 붉은 빛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된 지 오래였다. 그저 타고 남은 잔불처럼 끄트머리에 매달린 것이 전부였다.&lt;br&gt;&lt;i&gt;아니, 어쩌면 이건 말라붙은 핏물일지도.&lt;/i&gt;&lt;br&gt;&lt;br&gt;⋯그는 떨리는 손을 내려다보며 새삼스레 자신이 죽어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lt;i&gt;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lt;/i&gt;&lt;br&gt;적어도 새해를 맞이할 시간 정도는 벌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은? 모른다. 지금으로서는 끝을 '늦추는' 것이 고작이다. 편히 누워 죽음만을 기다리자니 겁쟁이인 그는 공포에 질식해버릴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계속해서 달릴 수 밖에 없었다.&lt;br&gt;희망이 없다 하더라도 두려워하고 절망할 시간조차 아까웠기에.&lt;br&gt;&lt;br&gt;많은 것이 두려웠다. 언제 꺼질지 모르는 불꽃을 안고 있는 것보다는 덜한 것들이었으나.&lt;br&gt;되찾은 과거는 이미 자신이 피로 물들어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기억 속 누군가 저를 부르던 말 그대로, &lt;i&gt;'괴물'&lt;/i&gt; 이라는 말이 누구보다도 어울리는 존재였다. 지금의 그 또한 그러했다. 괴물을 넘어 &lt;i&gt;사신 &lt;/i&gt;이 되었다. &lt;br&gt;&lt;br&gt;인간이 아니었다는 것을 안 이상,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갈 필요는 없었다. 그는 처음부터 타인을 잡아먹으며 삶을 영위하는 짐승일 뿐이었다. 그러니 이곳이 제게 걸맞은 자리다.&lt;br&gt;&lt;br&gt;그럼에도– 우습게도 '인간'으로 살아갔던 시간의 마음을 죽이지 못해 괴로워한다. 외롭다는 것이 어떤 건지 알아버린 탓에 그리워하고야 만다.&lt;br&gt;그렇지만, 아무런 근거도 없지만,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헛된 믿음일지도 모른다. 그저 마지막으로 붙잡고 싶은 희망을 억지로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지 않나.&lt;br&gt;더는 인간으로서 살아가고 있지 않기에.&lt;br&gt;그렇기에, 인간으로서 가진 소망이 입 밖으로 내뱉어지는 일은 없다. 그렇기에 당장 이것이 의미를 가진다 해도 변하는 것은 없다.&lt;br&gt;&lt;br&gt;그렇기 때문에 바란다.&lt;br&gt;마지막 순간에는 '나' 로서 존재하고 싶다고.&lt;br&gt;그러기 위해 내가 '나' 로서 존재하게 해 주는 이들을, 그리고 &lt;i&gt;당신 &lt;/i&gt;을 다시 만나고 싶다고⋯.&lt;br&gt;&lt;br&gt;하지 못했던 말들을 이야기하고, 어떤 마음이었는지 알려 주고 싶어. 거짓말이 되겠지만 헤어지지 않아도 된다고 하고 싶어. 뒤늦게라도 약속을 지키고, 새로운 약속들을 해 나가고 싶어.&lt;br&gt;⋯&lt;br&gt;안다. 알고 있다. 설령 정말 다시 만날 수 있다 하더라도 저 마음이 전해질 일은 없다. 전하지 않을 것이다. 전해져서는 안 된다.&lt;br&gt;눈물조차 흘리지 못하고 얼어붙은 지금의 내가 그 이유이자 증거다.&lt;br&gt;당신이 좋아하는 웃음을 보여줄 수 있는 '나' 는 이제 없어.&lt;br&gt;&lt;br&gt;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 싶다 생각하는 것은 지금의 그가 가진 유일한 욕심이다. 조금의 미련은 있다지만 살아가는 것은 이미 포기했다. 채워질 것이라는 기대 따윈 없다. 그저 그 온기마저 잊게 되기 전에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을 뿐이다. 분명히 지금보다도 더 망가져 버리겠지만, 어차피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 사신이 된 괴물은 체념한 표정으로 거울을 바라보며 웃었다.&lt;br&gt;&lt;br&gt;그러니 만약, 다시 만나게 된다면⋯ 딱 한 번만, 따뜻하게 안아줬으면 해.&lt;br&gt;&lt;i&gt;그럼 나는 거짓으로나마 사라질 때 까지 계속 웃을 수 있을 것 같아.&lt;/i&gt;&lt;br&gt;&lt;br&gt;&lt;/p&gt;&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br&gt;&amp;nbsp;&lt;/p&gt;</description>
      <author>Xounblu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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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5 Jan 2026 18:26:0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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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전조</title>
      <link>https://bluescript.tistory.com/4</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a href=&quot;https://youtu.be/paneqmGdM84?si=eI-IRzA62lOnntc6&quot; target=&quot;_blank&quot;&gt;&lt;span&gt;https://youtu.be/paneqmGdM84&lt;/span&gt;&lt;/a&gt;&lt;/p&gt;&lt;hr data-ke-type=&quot;horizontalRule&quot; data-ke-style=&quot;style5&quot;&gt;&lt;p data-ke-size=&quot;size16&quot;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lt;br&gt;&lt;br&gt;나는 '무엇'이 되고 있는 걸까?&lt;br&gt;&lt;br&gt;확실한 것은 지금의 나 —&lt;i&gt;'이자요이'&lt;/i&gt;— 와 이전의 나 —&lt;i&gt;&lt;span style=&quot;color: #781B33;&quot;&gt;'아르메리아'&lt;/span&gt;&lt;/i&gt;— 는 같은 사람일 수 없다는 점이다.&lt;br&gt;&lt;br&gt;⋯&lt;br&gt;&lt;br&gt;아무것도 모르는 시절의 나는, 확실히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완전히 만족할 수는 없었겠지. 마지막 순간에는 지금의 나보다 더 세상을 원망하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lt;br&gt;&lt;br&gt;⋯내가 도구로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건 조금 힘들었다. 그러니까, 어떠한 기준에서는 나를 '인간' 으로도 볼 수 없다는 뜻이었다. 나의 '재능' 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은 그저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던 거고.&lt;br&gt;⋯살아있는 생명으로서 나의 존재를 부정당한 것은 아니나, '인간'으로서 내가 나에 대해 알고 있던 모든 것들이 부정당한 것이다. 사관학교 이전의 기억조차 정말 나의 것이 맞는지 의구심마저 들기 시작했다.&lt;br&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다행히도 12살 이후 사이드 1에서부터의 기억들은 모두 '나' 의 것이었다.&lt;/span&gt;&lt;br&gt;&lt;br&gt;사관학교 시절, '당신은 따뜻한 사람이다' 라는 평을 자주 들었다. &lt;br&gt;&lt;br&gt;내 천성이 그런 건지, 아니면 사람에게 사랑받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랬던 건지는 모른다.&lt;br&gt;⋯적어도 '어린 시절' 의 '나' 는 따뜻한 사람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좀 멀었다고 생각한다.&lt;br&gt;하지만 나는 사람과 함께 할 때의 온기를 좋아해서, 나 또한 그 열기를 띠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열이란 것은 본디 낮은 쪽으로 옮겨 붙으며 온도를 주고 받으니까.&lt;br&gt;하지만 그런 감각은 나의 온도와 주변 온도와의 차이에서 오는 상대적인 것이라—&lt;br&gt;'혼자' 가 되어버린 지금, 나는 사무칠 정도로 추웠다.&lt;br&gt;그래서 무겁기만 하고, 몸에 맞다기에는 조금 큰 검고 두꺼운 외투를 벗을 수 없게 되었다.&lt;br&gt;이 무게로 몸을 감싸지 않으면, 나는 그대로 얼어붙어 어딘가로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아서.&lt;br&gt;그리고 그 온도를 다시 느끼고 싶어서— 나는 나 자신을 연료 삼아 불을 피웠다.&lt;br&gt;⋯적어도 불타는 동안에는 춥지 않았다. 태운 뒤에 더 큰 추위가 찾아왔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지만.&lt;br&gt;&lt;br&gt;가끔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lt;br&gt;당연하게도, 나에게 뉴타입적인 능력 같은 것이 있을 리 없기 때문에 &lt;i&gt;—'전 후견인' 덕분에 나와 관련된 과거의 기록까지 내 눈으로 확인했다—&lt;/i&gt; 내 망념에서부터 비롯된 환청이었다. 살아 있으면 살아 있다고, 아니면 죽었다고 확실하게 소식을 알려 주면 좋을 텐데.&lt;br&gt;&lt;br&gt;내 곁에 없을 뿐, 어딘가에 살아 있을 거라고 멋대로 생각하고 있다.&lt;br&gt;&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죽지 않은 거지, 그렇지? 다시 만날 수 있다고 해 줘.&lt;/span&gt;&lt;br&gt;그럴 때 마다 내가 앗아가고 짓밟은 이들의 목소리 또한 들려온다.&lt;br&gt;그러면 나는 또 다시 허공을 향해 총구를 겨눈다.&lt;br&gt;&lt;br&gt;차라리 이대로 죽어버릴까, 라는 생각도 했다.&lt;br&gt;하지만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잠에 드는 것 조차 두려워하는 내게⋯ 스스로 목숨을 끊을 용기 따위 있을 리 만무했다.&lt;br&gt;무엇보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lt;br&gt;아직 하지 못한 일이 많은데.&lt;br&gt;하지만 '다음' 이 없다는 것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내쉬는 것 마저— 그 모든 순간이 내게는 단 한 번의 기회인 것이다.&lt;br&gt;유한한 것이 찬란하고 아름답다고는 하나, 너무 짧은 것은 아름다움을 느낄 새도 없이 슬프게 저물어버린다. 나는 그게 싫었다.&lt;br&gt;섬광과 함께 한순간에 사라져버린 수많은 생명들과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릴 때 마다 슬프고 괴로워서— 눈물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고 버석하게 말라붙을 때 까지, 아주 오래 울었다.&lt;br&gt;내가 사라지면, 너희도 나처럼 오래 슬퍼하며 울게 될까? &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그건 싫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기쁠지도.&lt;/span&gt;&lt;br&gt;하지만 역시 나 같은 걸 위해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면 한다.&lt;br&gt;&lt;br&gt;어느 순간부터는 죽는 것 만큼 사는 것이 무서워졌다.&lt;br&gt;뚜렷한 목표도, 하고 싶은 것도 없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진정 하고 싶은 것들— '꿈'과 좋아하는 것을 쫓기에 내게 남은 시간은 너무나도 적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내가 혼자서라도 행복해지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런 내가 택할 수 있는 건 현상 유지 뿐이었다.&lt;br&gt;&lt;br&gt;아픔에 익숙해지는 게 싫었다.&lt;br&gt;나날이 늘어만 가는 상처와 흉터들을 바라본다. 괜찮아? 라고 묻는 사람도 없다. 어쩌겠어, 일단은 살아야 하고, 살려면, 참아야지. 그렇지만 정작 그리 물어 줄 사람이 다시 생겼을 때 이런 상처들이 더는 아프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무감각해져버리면 어떡하지?&lt;br&gt;아무나 붙잡아서 너무 괴롭고 힘들다고 털어놓으며 잠시라도 좋으니 포옹이라도 해 달라 청하고 싶다가도, 이런 차가운 세상에서는 사람을 함부로 믿거나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말았기에.&lt;br&gt;마음을 주게 되면 결국 필연적으로 상처를 받게 되어 있다.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더 이상의 상처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이미 마음을 준 이들 외에 누군가에게 더 마음을 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라는 사람은 저도 모르게 마음을 주는 이였다.&lt;br&gt;결국 익숙해져야만 했다. 타인을 상처입히는 것도, 자신을 상처입히는 것도.&lt;br&gt;&lt;br&gt;모순적이게도 이 순간에도 나는 나와 마찬가지로 살고 싶다 말하는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간다.&lt;br&gt;마치 누군가를 잡아먹으며 그만큼 더 생을 이어가듯이.&lt;br&gt;하지만 저들이 말하는 '살고 싶다' 가 진정 나와 같을까? 그건 알 수 없다. 타인의 마음 같은 건 모르니까.&lt;br&gt;하지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쪽이다.&lt;br&gt;'타인' 이 살아온 삶은 결코 나와 같을 수 없다. 그러니 그들이 말하는 '삶' 역시 나와 같을 수 없다. 각자가 느끼는 무게 또한 다를 것이며, 누군가는 이리 말하고 있는 나—&lt;i&gt;타인&lt;/i&gt;—의 삶을 깃털, 아니, 저기 떠도는 흙먼지보다도 가볍고 하찮은 것으로 치부할 것이다. &lt;span style=&quot;color: #9D9D9D;&quot;&gt;그리고 나 또한 그 '누군가' 중 하나다.&lt;/span&gt;&lt;br&gt;&lt;br&gt;가끔 생각한다.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하고.&lt;br&gt;하지만 나는 다른 방법 같은 건 모른다. 사람이 어떻게 사람의 손을 잡고 일어서는지 나는 모른다. 손을 내밀 줄만 알고, 내민 손을 잡고 다시 일어서는 법은 모른다. 아니, 어쩌면 제대로 손을 내미는 법 조차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가르쳐 줄 이도 없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끊어내는 것 뿐이다.&lt;br&gt;이제 와서 도움을 청하기엔 늦은 것도 있다. 왜 내 곁에 남아주지 않았냐며 떠나버린 이들을 원망하려다가도, 차마 그럴 수 없어 화살을 내게 돌린다. &lt;br&gt;&lt;br&gt;그리운 이름 아래 다시 모일 수 있다는 이야기는 내게 있어 너무나도 큰 희소식이었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어쩌면 사라져 버렸던 이들도 그 곳에서 재회할 수 있을까. 그런 마음에 나는 순간 괴로운 것도 전부 잊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게 마지막이 되더라도 좋으니 다시 한 번 소중한 사람들의 곁에 있고 싶었다. &lt;br&gt;동시에 역설적이게도, 그토록 그리워하던 그 온기 속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다시 그 열기를 느끼면,&amp;nbsp;&amp;nbsp;이 추위 속으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 버틸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lt;br&gt;그럼에도 열기를, 사랑을 갈구하게 되어버려서— 나는 녹아내린다. 사람과 포옹하는 것을 좋아하는 눈사람이라도 되어버린 것 같다.&lt;br&gt;&lt;br&gt;결국 나는 이 뜨거운 추위 속에서 종말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lt;br&gt;&lt;br&gt;세상에 남겨질 흔적 같은 건 필요 없다. 누군가의 마음 속에 남겨진 흔적만으로 충분했다.&lt;br&gt;사랑하고, 사랑받았노라고. 그래서 너무나도 쓸쓸했고 외롭지 않았노라고.&lt;br&gt;마지막 순간에는 그렇게 말하겠다.&lt;br&gt;&lt;br&gt;총성이 울려퍼지고, 스코프 너머로 꽃이 피어오른다. &lt;br&gt;출발할 시간이다.&lt;/p&gt;</description>
      <author>Xounblu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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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5 Jan 2026 18:22:2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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