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이 되고 있는 걸까?
확실한 것은 지금의 나 —'이자요이'— 와 이전의 나 —'아르메리아'— 는 같은 사람일 수 없다는 점이다.
⋯
아무것도 모르는 시절의 나는, 확실히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완전히 만족할 수는 없었겠지. 마지막 순간에는 지금의 나보다 더 세상을 원망하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가 도구로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건 조금 힘들었다. 그러니까, 어떠한 기준에서는 나를 '인간' 으로도 볼 수 없다는 뜻이었다. 나의 '재능' 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은 그저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던 거고.
⋯살아있는 생명으로서 나의 존재를 부정당한 것은 아니나, '인간'으로서 내가 나에 대해 알고 있던 모든 것들이 부정당한 것이다. 사관학교 이전의 기억조차 정말 나의 것이 맞는지 의구심마저 들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12살 이후 사이드 1에서부터의 기억들은 모두 '나' 의 것이었다.
사관학교 시절, '당신은 따뜻한 사람이다' 라는 평을 자주 들었다.
내 천성이 그런 건지, 아니면 사람에게 사랑받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랬던 건지는 모른다.
⋯적어도 '어린 시절' 의 '나' 는 따뜻한 사람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좀 멀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사람과 함께 할 때의 온기를 좋아해서, 나 또한 그 열기를 띠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열이란 것은 본디 낮은 쪽으로 옮겨 붙으며 온도를 주고 받으니까.
하지만 그런 감각은 나의 온도와 주변 온도와의 차이에서 오는 상대적인 것이라—
'혼자' 가 되어버린 지금, 나는 사무칠 정도로 추웠다.
그래서 무겁기만 하고, 몸에 맞다기에는 조금 큰 검고 두꺼운 외투를 벗을 수 없게 되었다.
이 무게로 몸을 감싸지 않으면, 나는 그대로 얼어붙어 어딘가로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아서.
그리고 그 온도를 다시 느끼고 싶어서— 나는 나 자신을 연료 삼아 불을 피웠다.
⋯적어도 불타는 동안에는 춥지 않았다. 태운 뒤에 더 큰 추위가 찾아왔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지만.
가끔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당연하게도, 나에게 뉴타입적인 능력 같은 것이 있을 리 없기 때문에 —'전 후견인' 덕분에 나와 관련된 과거의 기록까지 내 눈으로 확인했다— 내 망념에서부터 비롯된 환청이었다. 살아 있으면 살아 있다고, 아니면 죽었다고 확실하게 소식을 알려 주면 좋을 텐데.
내 곁에 없을 뿐, 어딘가에 살아 있을 거라고 멋대로 생각하고 있다.
죽지 않은 거지, 그렇지? 다시 만날 수 있다고 해 줘.
그럴 때 마다 내가 앗아가고 짓밟은 이들의 목소리 또한 들려온다.
그러면 나는 또 다시 허공을 향해 총구를 겨눈다.
차라리 이대로 죽어버릴까, 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잠에 드는 것 조차 두려워하는 내게⋯ 스스로 목숨을 끊을 용기 따위 있을 리 만무했다.
무엇보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아직 하지 못한 일이 많은데.
하지만 '다음' 이 없다는 것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내쉬는 것 마저— 그 모든 순간이 내게는 단 한 번의 기회인 것이다.
유한한 것이 찬란하고 아름답다고는 하나, 너무 짧은 것은 아름다움을 느낄 새도 없이 슬프게 저물어버린다. 나는 그게 싫었다.
섬광과 함께 한순간에 사라져버린 수많은 생명들과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릴 때 마다 슬프고 괴로워서— 눈물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고 버석하게 말라붙을 때 까지, 아주 오래 울었다.
내가 사라지면, 너희도 나처럼 오래 슬퍼하며 울게 될까? 그건 싫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기쁠지도.
하지만 역시 나 같은 걸 위해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면 한다.
어느 순간부터는 죽는 것 만큼 사는 것이 무서워졌다.
뚜렷한 목표도, 하고 싶은 것도 없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진정 하고 싶은 것들— '꿈'과 좋아하는 것을 쫓기에 내게 남은 시간은 너무나도 적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내가 혼자서라도 행복해지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런 내가 택할 수 있는 건 현상 유지 뿐이었다.
아픔에 익숙해지는 게 싫었다.
나날이 늘어만 가는 상처와 흉터들을 바라본다. 괜찮아? 라고 묻는 사람도 없다. 어쩌겠어, 일단은 살아야 하고, 살려면, 참아야지. 그렇지만 정작 그리 물어 줄 사람이 다시 생겼을 때 이런 상처들이 더는 아프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무감각해져버리면 어떡하지?
아무나 붙잡아서 너무 괴롭고 힘들다고 털어놓으며 잠시라도 좋으니 포옹이라도 해 달라 청하고 싶다가도, 이런 차가운 세상에서는 사람을 함부로 믿거나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말았기에.
마음을 주게 되면 결국 필연적으로 상처를 받게 되어 있다.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더 이상의 상처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이미 마음을 준 이들 외에 누군가에게 더 마음을 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라는 사람은 저도 모르게 마음을 주는 이였다.
결국 익숙해져야만 했다. 타인을 상처입히는 것도, 자신을 상처입히는 것도.
모순적이게도 이 순간에도 나는 나와 마찬가지로 살고 싶다 말하는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간다.
마치 누군가를 잡아먹으며 그만큼 더 생을 이어가듯이.
하지만 저들이 말하는 '살고 싶다' 가 진정 나와 같을까? 그건 알 수 없다. 타인의 마음 같은 건 모르니까.
하지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타인' 이 살아온 삶은 결코 나와 같을 수 없다. 그러니 그들이 말하는 '삶' 역시 나와 같을 수 없다. 각자가 느끼는 무게 또한 다를 것이며, 누군가는 이리 말하고 있는 나—타인—의 삶을 깃털, 아니, 저기 떠도는 흙먼지보다도 가볍고 하찮은 것으로 치부할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그 '누군가' 중 하나다.
가끔 생각한다.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하고.
하지만 나는 다른 방법 같은 건 모른다. 사람이 어떻게 사람의 손을 잡고 일어서는지 나는 모른다. 손을 내밀 줄만 알고, 내민 손을 잡고 다시 일어서는 법은 모른다. 아니, 어쩌면 제대로 손을 내미는 법 조차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가르쳐 줄 이도 없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끊어내는 것 뿐이다.
이제 와서 도움을 청하기엔 늦은 것도 있다. 왜 내 곁에 남아주지 않았냐며 떠나버린 이들을 원망하려다가도, 차마 그럴 수 없어 화살을 내게 돌린다.
그리운 이름 아래 다시 모일 수 있다는 이야기는 내게 있어 너무나도 큰 희소식이었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어쩌면 사라져 버렸던 이들도 그 곳에서 재회할 수 있을까. 그런 마음에 나는 순간 괴로운 것도 전부 잊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게 마지막이 되더라도 좋으니 다시 한 번 소중한 사람들의 곁에 있고 싶었다.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그토록 그리워하던 그 온기 속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다시 그 열기를 느끼면, 이 추위 속으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 버틸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럼에도 열기를, 사랑을 갈구하게 되어버려서— 나는 녹아내린다. 사람과 포옹하는 것을 좋아하는 눈사람이라도 되어버린 것 같다.
결국 나는 이 뜨거운 추위 속에서 종말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세상에 남겨질 흔적 같은 건 필요 없다. 누군가의 마음 속에 남겨진 흔적만으로 충분했다.
사랑하고, 사랑받았노라고. 그래서 너무나도 쓸쓸했고 외롭지 않았노라고.
마지막 순간에는 그렇게 말하겠다.
총성이 울려퍼지고, 스코프 너머로 꽃이 피어오른다.
출발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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